일상

나의 청소년기 라이벌 - "친언니"

IamDreaming 2010. 10. 1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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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연연생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연연생"이란 말이 붙은걸 보면, 연연생으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유독 많이 싸우며 자랐을 것일는 확신이 든다.

나 역시 언니와 '연연생', 언니는 2월생이고 나는 8월생이다.

유독 어릴때부터 공부를 잘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이란 칭찬은 혼자 다 듣고, 대회에 나갔다하면 상까지 휩쓸어오는 언니,
반면에 나는 유치원을 다녀도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고, 칭찬은 커녕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다 오는 평범한 어린이었다
.

한살 차이밖에 나진 않지만, 목욕탕을 가면 언니가 직접 때수건으로 때를 밀어주었고,
학교에 입학해서는, 내 숙제때문에 언니가 아빠한테 혼난 적도 있다.

이렇듯, 매사에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언니었건만,
왜 그렇게 언니를 미워하고 질투했는가 싶을 정도로 나는 정말 마음이 좁고, 이해심이 적었다. 

지금에야 이렇게 모든것을 체념한 듯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시절에는 언니란 존재는 항상 내 옆에서 비교대상이었다. 

# 엄마가 첫째 딸인 언니에게 "아람단" 옷을 입펴준다.
그 시절, 아람단은 걸스카웃트, 보이스카웃트와 함께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니폼과 함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 옷 한번 입어보지도 못 했다.

# 언니가 빨간펜 학습지를 한다.
어랏, 언니가 숙제를 하루이틀 미루기 시작하자 학습지를 그만두란다.
그리고선, 학습지 소용없다며 나는 시켜주지도 않는다.

# 언니가 대학을 서울로 간다.
학비가 엄청 비싸다. 다음해 내가 대학입학할 때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진다.
난, 그냥 이곳에서 머물기로 한다.

# 언니에게 용돈은 있냐고 물어본다.
어랏, 나도 돈이 없는데 나에겐 3만원, 언니에겐 한달치 30만원이 주어진다.

# 언니가 대학원을 간단다.
집에 돈도 없는데 대학원이라니...
소심한 나는 대학원 생각도 안한다. 그리고 언니는 철 없다며 비판한다.

언니가 하는 모든것이 나에겐 질투의 대상이자 시기의 대상이었다.
첫째딸로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언니의 삶은 나에겐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부러우면서도 섣불리 따라하진 못했다. 그러기엔 생각할 게 너무 많았으니까...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줄곧 언니와의 비교와 질투에 눈이 멀어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언니와 나에게 공평하게 뭔가를 시켜줬어도 될 것을,
엄마는 첫째라는 이유로 모든것을 딱 한번만 시도해 본 듯 하다.

질투많은 둘째딸 생각을 1%만 더 했더라도 이런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너무 체력소모가 큰 듯..

이런 체력소모와 함께 늘 결심했던 생각들이 있다.

내가 언니보다 무조건 잘되어야 해!!
내가 잘 되어, 엄마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
이 담에 커서는 언니가 엄마에게 효도해야 해!!
난 받은게 없어 엄마한테 뭘 안해줘도 돼!!

피해의식으로 생겨나는 100가지 나쁜 생각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면서도 이런 생각을 가끔씩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지쳤나 보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게 인생무상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을 넓게 가졌더라면,
나 스스로가 좀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성과를 얻었더라면,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당당했더라면,

후회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 진다.
언제 그 몹쓸놈의 "라이벌" 의식이 없었졌나 싶을 정도로 평온하다.

친언니를 대상으로 가졌던 "라이벌" 의식이 나에게 가져다 준것은 뭘까??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이다.
한살 한살의 연륜은 모든 것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현재 내 삶에 충실하도록 만들었다.
효도..
그것은 라이벌 의식이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니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남겨놓은 단 한가지,
언니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어
근 30살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언니'란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야!!

이 말만 입밖으로 나온다.

아. 언니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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