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발터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IamDreaming 2011. 5. 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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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을 전공하다보면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름을 종종 듣게 된다. 그리고 '예술의 아우라'라는 것도 들을 기회가 많다. 많은 책에서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를 인용했었고, 나 역시 여러 책을 통해서 이론을 접했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게 되었다. 많은 책에서 원본의 일부만을 인용하여 지식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아서, 벤야민의 전반적인 이론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이번기회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관한 벤야민의 생각을 곰곰히 분석하고 이해해 본다. 

벤야민 하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게 제일 유명한데 이것은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이란 책 속의 한 장(chapter)였다. 벤야민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자본주의적 미래를 분석함으로써 예언적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처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역시 변화의 양상에 대한 예언적 요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하였다.  예술적 수련을 위해 도제들에 의해 행해졌고, 작품의 보급을 위해 예술의 대가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제3자에 의해 행해졌다. 그러나 이때는 청동제품, 주화 정도의 복제로 모두 일회적인 것이었고, 기술적 복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석판인쇄의등장과 함께 복제기술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는 판화술로 이어졌고, 다시 사진술의 영상복제기술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영상의 복제과정은 말할 수 없이 촉진되었고, 1900년 이후에는 전래적인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있다. 시간과 공간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일회적 현존성이다. 원작 Original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청동작품은, 그 녹청을 분석함으로서 진품성 여부를 확인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품성은 위조품이라는 낙인이 찍힌 손으로 만든 제품의 복제에 대해 그 권위를 백퍼센트 유지할 수 있지만,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1.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닌다. - 렌즈에 의해 기계적 조작을 받아 자연적 시각에서 포착될 수 없는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 있다.
2. 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포착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원작의 모상(模償)을 가져다 놓을 수 있다. - 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주된 합창곡이 어느 집의 방안에서 들을 수 있다.

# 이러한 복제의 과정에서 예술작품의 'Aura'는 위축된다. 복제기술은 복제품을 대량생산함으로써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서 대체시킨다. 수용자들로 하여금 복제품을 현재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것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종류와 방법에 의해서도 규정되는데 오늘날의 대중은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보다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오고자 하는 열렬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또 복제를 통하여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동질적인 것에 대한 현대인의 지각작용의 감각은 너무 커져, 지각작용은 복제를 통하여 일회적인 것으로부터도 동질적인 것을 찾아내고 있을 정도이다.

# <진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제아무리 매개가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세속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의 세속화된 의식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즉, 예술작품은 마술적 의식, 종교적 의식에 봉사하기 위해 생겨났고,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지금까지의 종교적 의식 속에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정치적 기능을 포함한 다른 사회적 기능들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 예술작품의 수용은 역점을 달리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첫번째 역점이 의식적이고, 두번째 역점은 전시가능성이다. 예술작품이 밀실에서 마법적 도구로 마치 신령들을 위해 바쳐졌던 예전에  비해, 오늘날에는 복제로 인해 전시가능성이 훨씬 커짐으로써 새로운 기능을 가진 형상체가 되었다.

#  영화를 보는 관중들은 카메라와 같이 시험적 태도를 취한다. 카메라의 각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종교의식적 가치를 드러내는 태도는 결코 아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은 집단적 수용을 가능케 했고, 카메라의 기계적 조작은 현실을 인위적으로 포장하고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 예술에 참여하는 대중의 수적 증가는 참여하는 방식의 변화를 초래하는데, 벤야민은 대중의 참여방식을 정신분산, 즉 오락으로 규정한다. 영화관에서의 관중의 비평적 태도가 주의력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종교의식적 가치를 뒷면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한다.

[인용책]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발터 베야민지음, 반성완 역, 민음사, pp.197~231


 


위의 내용인 20장 가까이 되는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나와 있는 대략적인 내용이다.
영화에 관한 부분은 의도적 생략된 부분이 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관해 벤야민은 종교적으로는 아우라가 쇠퇴했지만, 다른 형태로써 예를 들면, 더 많은 수용자를 참여시키고(오락을 위해), 전시기능이 확대되는 등의 형상체로서 발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아우라에 관해서는 초기에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나 후의 발전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벤야민의 선행연구는 그의 말대로 예언적 가치를 띄고 있으며 많은 곳에서 인용되기도 하고 비판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품의 복제가 더 쉬워졌다. 벤야민의 개념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복제품에 대해 복제품이냐 진품이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물론, 전통작품에 대해서는 진위여부가 중요하다.) 예술품의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 우리의 개념은 소장의 가치로, 알림을 위한 보급의 가치로,  혹은 오락을 위해서 일수도 있다. 이러한 개념이 바뀌는 데는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된 우리의 인식이 중심에 있을 것이다.

어쨋든 벤야민의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기에, 나의 블로그를 빌어, 그 개념을 정리, 요약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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