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책] 욕망의 통제와 탈주

IamDreaming 2011. 5. 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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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철학강의를 들게 된 이후부터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조금은. 철학이란 성인들의 말뜻을 알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을 통해 삶을 지혜롭게 살기 위함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한다면 어느새 공부 자체가 재미있어져 버릴지도...

조금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 전경갑교수님이 쓴 '욕망의 통제와 탈주'라는 책을 구입했다. 학창시절 수업을 들어본 경험이 있기에 전경갑교수님의 문체에 익숙하다. 어려운 글도 쉽게 이해시켜주시고, 무엇보다도 예시가 일품이다. 그분의 지적능력을 존중하는 이유가 이 책을 고르게 된 주된 동기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에서 들뢰즈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적 관점의 욕망이론들을 다룬 책. 욕망의 문제를 스피노자부터 들뢰즈까지 계보학적으로 정리한 입문서이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라캉, 라이히, 마르쿠제, 푸코 등 주로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물론적 욕망이론과 관계가 깊은 욕망이론들을 체계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성인의 말뜻을 알기엔 나 스스로가 너무 어리고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몇 철학자들에 대한 글의 결론부분을 다시 한번 읽으며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스피노자 : 욕망의 윤리학
스피노자는 필연성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힘을 고양시키는데 인간의 행복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는 어길 수 없는 필연적 법칙이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슬퍼해 봐야 소용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필연성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치료를 받아면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삶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힘을 높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상반된 두 힘의 관계, 즉 능동적 힘과 수동적 힘의 세력관계로 보는 힘의 철학자이다.  스피노자는 행복한 생활 혹은 덕있는 삶을 가능케 하는 첫째 기준이자 유일한 기준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힘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보며 또한 이성의 주도하에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피상적이 아니라 근복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는 능동적 힘을 강화해가는 삶을 자유인이 삶으로 본다.

2. 헤겔 : 욕망에서 이성으로
칸트는 보편적 윤리준칙에 역행하는 모든 유형의 이기적 욕망을 억합하고 신은 이론적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물자체로 배제해 버렸으나, 헤겔은 이기적 욕망뿐 아니라 신에 이르는 모든 것을 이성 안에 포섭했다.
헤겔은 이기적 욕망을 삶을 추동시키고 이성적 결론에 이르는 하나의 주요 동인으로 본다.
이를 통해 정신현상학을 통해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된 배타적 실천이 공존의 윤리로 성숙된다는 것, 이기적 욕망의 주체가 개별적 자아의식을 극복하고 보편적 자아의식인 이성의 지평으로 나아간다는 것, 다시 말해 욕망의 열정이 이성의 꽃을 피우는 기름진 토양이라는 역동적인 철학을 전개해 나간다.

3. 쇼펜하우어 : 맹목적 의지

쇼펜하우어어 철학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무의식적인 의지에 착안하여 인간의 삶을 해명하는 비주류적 생의 철학에 속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그 근저에서 지배하는 것은 끈질기고 충동적인 맹목적 의지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나 지적 능력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의지에 종속된 노예와도 같다. 삶은 고통이며, 그래서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삶의 고뇌로부터 해탈을 촉구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자아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의 심연에서 끊임없이 맹목적 의지작용의 구성물일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맹목적이기에 끝없는 욕망이고 영원히 충족될 수없는 결핍이며, 따라서 삶은 구제할 수 없는 고통이요 끊임없는 절망이다.
 
4. 니체 : 힘의 의지와 욕망
니체는 의지를 투쟁하고 정복하고 창조하려는 자발적 힘의 의지요 권력의지로 본다. 그렇지만 아무리 격렬한 고통이라도 이를 운명애(運命愛)로 받아들이고 자기긍정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여 생성할 수 있는 힘을 고양시키려 한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다원적이고 이질적이며 자발적인 생성의 역동이다. 따라서 내면의 어떤 불변적 실체가 아니라 대립된 의지들간의 투쟁관계이며, 투쟁을 통해 대상을 정복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를 창조해가는 생성이 힘이다.

5. 프로이드 : 문명의 리비도의 억압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욕망의 철학이고 무의식적, 비합리성을 강조한다. 전기의 프로이드는 무의식적 욕망의 궁극적 본질을 여러 상징적 표상으로 이루어진 정신적 현상으로 파악했고, 이드 개념이 등장하는 후기에는 욕망을 단순한 정신적 표상이라기 보다 신체와 직결된 물질적 에너지로 개념화했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은 본능적 이드와 사회윤리적 규범이 내면화될 때 형성되는 초자아로 나누어지며 리비도의 욕망이 의식적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강조한다. 프로이드의 연구목적은 의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역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의식의 불완전성을 최대한 극복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돕는데 있었다. 프로이드의 이론은 데카르트 이래로 내려온 이성적 인간관을 새로운 인간관으로 바뀌게 했고, 이는 주체의 탈중심화를 선언하는 구조주의 및 포스트구조주의적 담론, 그리고 프로이트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자원으로 원용되고 잇다.

6. 라깡 : 언어적 욕망이론
라깡의 언어학적 정신분석이론은 욕망의 사회문화적 상징성을 강조한다. 주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수준의 결핍이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라깡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재해석하였는데 프로이드와 라깡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프로이드가 자아는 현실원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작용하고, 무의식적 욕망은 쾌락원칙에 따라 환상적 원망충족을 추구한다. 따라서 프로이드는 자아를 환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앗으나 라깡은 주체적 자아란 이미 타자적 기표에 의해 끊임없이 구성될 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종속과 소외를 전체로 한 것이므로 의식적 주체는 하나의 환상이며, 무의식이 특권적 지위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결론부분 및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라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읽는 이글의 독자들에게는 전경갑 교수님의 책이 어렵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또한 이러한 부분적 발췌가 원문에 훼손을 입히는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책의 내용에 관해 참고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문은 훨씬 재미있고 즐겁다.

책을 읽으며 나의 욕망은 과연 무언인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피노자의 욕망에 의한다면, 나의 삶은 언제가는 죽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내야 하는 삶일테고, 헤겔의 욕망에 의한다면 이기적 욕망을 두려워 말고 삶의 동인으로 실천적 삶을 살아가면 될 터이다. 또한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맹목적으로 고통받으며 절망하면서도 살아내고, 니체에 의하면 투쟁하고 정복하려는 자발적인 의지로 역동적인 삶을, 프로이드에 의하면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나의 인격을 형성해가며 무의식에 이끌린 의식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라깡에 의하면 사회체제 안에서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환상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철학자의 이론이 어떠든 나의 삶과 닿아있다.
나의 삶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목적성이 있든 맹목적이든 나는 오늘을 산다. 내일을 위해 투쟁하고 환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철학이란게 참 우습다. 삶의 지혜인 것 같기도 하지만 말장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생각한다. 나의 삶을 부정할 필요가 없으며, 긍정하며 힘차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삶의 배경으로 각자의 생각으로 무장되어 있기에,  어느 누구의 삶도 부정해서는 안되며, 긍정하며 노력하며 서로 조화롭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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