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한 권 샀습니다. 시집은 제가 세번째로 직접 사 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 삶이 바짝 말라 있었나 봅니다. 시를 읽을 생각도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백두도인님의 블로그에 놀러가서 도인님의 시를 한번씩 있습니다. 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분의 마음과 감정을 함께 느낄 수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시를 접하게 된게 백두도인님의 글을 보고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두도인님의 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까지 는 '시'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제야 드는 생각입니다만, 시는 뭐랄까... 산문보다 몇 배는 더 큰 여백을 지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깊고 잔잔한 여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나서는 바로 다음 시를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만큼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음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시가 좋아지는 가을이었고, 또 20대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김용택 시인의 '속눈썹'이라는 시집을 추천받았습니다. 제가 참 무식하게도 김용택 시인이 영화 '시'에 나왔던 그 시인이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어쩜 이리도 무식한지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영화속의 시인은 참 맛깔나는 사람이었는데 시집속에 담겨진 그 분의 글 역시 맛깔스럽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솔직합니다. 사람에게 홀딱 반한 마음, 시에도 홀딱 반합니다.
시집에 들어있는 구절들이 하나같이 다 좋으나 그 중에 마음이 아련해지는 시가 있어 한 편을 적어 볼까 합니다.
- 김 용 택 -
나는 나를 눈멀게 한
한 남자를 만나
그 남자와 손을 잡고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가고
머물고 싶은 데 마음대로 머물고 싶었네.
그 남자에게서 눈 떼지 않고
살고 싶었네.
대문 없는 집에 살고 싶었네.
마당 귀퉁이에 채마밭이
있으면 더욱 좋고
마루에 앉아 강을 보다가
앞산 뒷산을 보다가
새 사는 집을 둘러보니
대문이 없었네.
대문 없는 집이
가난한 집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네.
살다가, 살아가다가
쉬고 싶으면
혼자 찾아가 하룻밤을 지낼
절간이 있었으면 했네.
그 절간 뒤안에밤새 눈을 퍼붓고
달이 밝으면
새가 울겠지.
그 새소리를 들으면
잠들고 싶었네.
어느날, 어느 절간에
나 깊이 잠들어 있었네.
산이 나를 가져갔네.
그 남자, 내 남자가
나를 가져갔네
시를 읽으며 가난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남자가 있었기에 아내는 행복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남자로 인해 아내는 죽음마저 평온했었던 모양입니다. 사랑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가난마저도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힘든일이겠죠? 압니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만은 붙들고 있어야겠죠...
오늘 저녁에는 시 한편 한편을 찬찬히 읽으며 잠들려고 합니다. 급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읽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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