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개밥바리기 별

IamDreaming 2012. 3.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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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읽는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는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과연 책이란걸 곱씹고 또 곱씹어야 기억이 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책읽기가 너무 대충이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둘 중 하나는 문제가 분명하다.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별은 '준'이라는 학생의 성장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책이다. '준'이라는 학생의 청소년기는 어쩌면 부러울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이 시대 청년기를 이렇듯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수업은 듣지 않고 산에 한 달쯤 들어가 사색에 잠기고,  커피숍을 아지트로 친구들과 몰려다닌다면 십중팔구는 '문제아'로 낙익찍히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개밥바라기별은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학생 본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준'뿐만 아니라 준의 친구인 상진, 인호, 정수, 선이 등...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그들만의  순수함으로 자신들이 읽고 바라본 세상을, 그리고 그들의 심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객관화된 세계가 아닌 주관적이고 그들 나름의 세상인 것이다.




주인공 '준'의 영혼은 자유롭다. '방황하는 청소년기'이기도 하지만' 준'은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으랴?

# 방황하는 청소년 '준'이 본 시대의 엘리트들, 그리고 자신이 택한 길은 이것이다.


당시에는 명문고교의 어린 '신사들의 모임'을 서로가 대단하게 여겼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세상 어느 사회에나 있는 엘리트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좌절하거나 아니면 살아남아서 요 모양의 산업사회를 이끌어갈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 그들은 그맘때에 벌써 세계문학전집이나 사상전집 따위를 모조리 읽어치우고 어른들도 읽기 힘든 사회과학이나 철학책들을 읽고 의전하게 비평을 하며 토론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자는 않았다.
.......
하지만 그들이 가진 매력 가운데 으뜸인 것은 역시 자기 존재와 생각을 서투르게 드러내지 않는 점이었다.
.......
자퇴를 하고 나서 맥놓고 걸어가던 하굣길이 생각난다. 막상 일을 저질러놓고 나니 이제부터 내 앞에 놓인 길은 어디나 뒷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이제 의사나 법관이나 관료나 학자나 사업가나 존경받을 장래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잘려나온 것이다.

                                                                                            <개밥바리길 별 185~186 中>


# '준'이는 똑똑한 학생이다. 그는 자신의 삶과 방향을 스스로 택한 사람이었다. 비록 엘리트들의 신사모임, 그리고 정형적인 틀에 박혀 사는 모범생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았으나, 그는 신춘문예에서 당선이 될 만큼 글재주가 있었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주관과 확신이 있는 학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정해진 길'을 벗어난다는 것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물론 '준'이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고 하였으나 그는 그 길을 벗어났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 의사나 법관, 학자 같은 존경받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잘려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며 우리들 중 과연 몇%나 의사나 법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정형화된 길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단조롭고 평범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준'의 삶은 어느 면에서 보면, 조금은 부럽고 존경스럽다. 과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탐구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만들어갈 길은 어떤 길인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 개밥바라기 별
- 비어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를 개밥바리기 별이라고 불렀다. 잘 나갈때는 '샛별', 저렇게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바바리기 별'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하나의 별을 두고도 이렇게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는 걸 보면, 그 존재의 특이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 된 잣대로 모든 것을 이분화 시키는 이 세상사람들의 위선이 보이는 것도 같다. 정형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을 무자비하게 '문제아'로 낙인찍어 버리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것이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황석영의 어린시절을 담아냈다. 저자는 이 시대를 그리고 이 시대의 엘리트들을 다소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황석영의 어린시절로 읽어내지 않았다. 책 속의 주인공인 '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준'의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며 저자의 삶이 참 멋지다, 혹은 저자가 참 자유로운 삶을 살았구나하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 '준'의 모습...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데로 사는 삶...
자신만의 가치로 세상을 살아가고, 자신의 생각으로 미래를 헤쳐나가는 그만의 강직함과 패기가 부러웠다. 
문제아로 낙인 찍힐 수도 있는 그 삶, 세상이 부여한 책임과 의무를 벗어난 삶은...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책임과 자신의 의무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가 만들고 부과한, 그런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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