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영화] 케빈에 대하여 - 당연한 건 어디에도 없다

IamDreaming 2012. 9.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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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연가! 오랜만에 혼자 영화관에 들렀습니다. 그것도 영화의 전당에를...
‘내일 무엇을 할까’싶어 고민하던 참에 어제 우연히 영화의 전당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때마침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로 바로 ‘케빈에 대하여’
영화 제목만 보아서는 도통 무슨 영화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현재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은’ 시리즈에 속하는 ‘여자’의 삶에 관한, 그 무엇에 관한 한 영화인 듯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토마토 축제에서 즐기는 엄청난 인파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는 ‘축제’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암울했습니다. 토마토 속에서 웃고 있는 젊은이들을 덮어버리는 붉은 아니, 핏빛의 스크린, 그리고 우울한 음악.
이렇듯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당연시되는 어떤 것에 대해 의심을 품게하는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에바’는 현재를 살고 있음에도 과거에 대한 고통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우울함이 짙게 배여있습니다. 밤새 그녀의 집에는 누군가가 빨간색 페인트로 휘갈겨 놓았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돌아가는 길에 한 여인이 ‘에바’의 뺨을 크게 후려칩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힘들게 만들었을까?

 

 

 

바로 그것은 아들 ‘케빈’입니다. 케빈으로 인해 에바는 페이트 낙서와 뺨을 맞는 그 모든 수모들를 견뎌야만 합니다.
케빈은 태어난 직후부터 엄마와 어긋하기 시작합니다. 엄마 에바는 달래도 달래도 악을 쓰며 우는 케빈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린 케빈과 즐겁게 놀이를 하고 싶었지만, 반응 없는 케빈의 태도는 그녀를 힘들게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케빈을 보살피려고 했지만 케빈과의 거리는 좁혀지지를 않고 케빈은 어떤 이유인지 반항심만 가득히 쌓인채 사춘기를 맞습니다.

 

 

 

 


엄마와 케빈의 관계와는 달리, 아빠와는 잘 지냅니다. 아빠와 함께 정원에서 과녁맞추기 놀이를 하며 유년의 추억을 쌓습니다.케빈은 유독 엄마에게만 이유 모를 냉담함과 차가움을 보입니다.  반항심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긴 하지만 평범한 한 소년처럼 보이던 케빈은 결국 학교 여학생들을 화살로 쏘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 끔찍함을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온 에바는 집 정원에서 그의 남편과 어린 딸 역시 화살에 맞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힘든 상황을 겪은 에바, 혼자만의 집을 구하고 새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하면서 틈틈이 구치소에 갇혀있는 아들 케빈을 만나러 갑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여전히 둘 사이의 거리는 멀리만 합니다. 그렇게 케빈이 구금된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에바는 이제야 케빈에게 왜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케빈은 대답합니다.
“나는 엄마가 아는 줄 알았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전 어리둥절해 졌습니다.

영화는 극복되지 않은 엄마와 아들사이의 거리감을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들로 인해 여전히 괴로워했고 아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반항심과 복수심으로 가득차 보였습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관람 후 ‘케빈에 관하여’에 대해 간략히 적혀있는 전단지를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감독으로 추앙받고 있는 림 랜지감독의 상상력 넘치는 미장센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림 랜지 감독은 에바의 심리를 붉은색의 이미지로 다양하게 활용하여 그녀가 떨쳐 낼 수 없는 고통과 죄책감을 시각화 냄과 더불어 인물들의 내면을 밀도 깊고, 긴장감 넘치는 연출력은 원작의 본질을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케빈의 대하여>는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원하지 않은 아이의 임신으로 엄마가 된 에바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모든 엄마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모성 본능에 대한 도발적 질문임과 동시에 엄마를 향한 채워지지 않은 갈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당연하리만큼 여겨지는 모성애. 

자식들은 당연히 엄마가 모든걸 알고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엄마 역시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무조건적인 사랑도, 무조건적인 이해도 없나봅니다. 엄마가 아들 케빈에게 주는 사랑은 무한한 듯 보이지만 엄마는 서서히 지쳐갑니다. 케빈 역시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그에게는 여전히 궁핍한 어떤것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둘 사이는 자꾸만 꼬여만 가고 극복되지 못한 두 사람의 감정은 케빈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에바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죄책감에서 살게 됩니다.

 

 

영화는 '모성애'라는 그 감정을 따뜻하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묘사합니다. 

세상은 엄마와 자식과의 관계를 '친구인듯, 내 평생의 의지처이듯....' 그렇게 일방적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세상에 모든 모성애, 그리고 부모 자식관계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것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모성애라는 감정은, 사실 저에게는 생소한 감정입니다. 아직 그 감정을 느낄 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감정터치가 사실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 영화에 대해, 그리고 이 비극에 대해,  엄마의 무지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엄마의 사랑과 이해와는 무관하게, 악을 지닌채 태어난 아이에 대해 말합니다. 이에 따라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도 아이의 반항심을 바로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영화를 본 이후 3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이 영화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본 직후 나는 왜 어리둥절하기만 했을까? 그리고 왜 전단지를 보고서야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왜 에바와 케빈의 거리감은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좁혀지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 둘의 관계를 이렇게 꼬이도록 했을까?...

 

쉽지 않은 영화였던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이 영화의 여운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네요.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 아이를 대하는 에바의 두려움이 케빈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게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일과 양육사이에서 에바는 갈등했고, 케빈의 반응에 대해서 에바는 혼란스러웠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케빈에게도 느껴진 것은 아니었을까...싶습니다.

 

안타까운 것은...에바는 그 두려움을 왜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 하지 않았을까입니다. 남편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본다던지 아니면 케빈과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보다던지 말입니다. 결국 에바가 극복하지 못한 감정은 역시 양육이라는 당연함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국 극복되지 않은 이 감정으로 인해 에바와 케빈이 평생동안 짊어져야 하는 삶의 고통을 보며, 모성애라는 것과 양육이라는 것,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유대감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당연하게 생기고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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