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펑펑울었다.
성장, 자기계발, 반복적인 습관, 그리고 부자 이런 단어와 비전에 꽂혀 열심히 살면 더 풍요로운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싶어 하루하루를 그렇게 삭막하게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오랜만에 사람 사는 세상, 사람냄새, 가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빨치산은 아니지만 국졸에 오지랖에 자격지심으로 삶이 힘겨웠던 진짜 내 아버지가 많이 생각나서 그리웠고, 내 생활, 상황에 갇혀 이해하면 안 되었던 아버지라는 존재,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오버랩되면서 너무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책을 읽으며 펑펑 울었다.
사실 울기만 한건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어이없는 웃음도 조금씩 새어 나왔다. 불가능했으나 한약 한재를 먹고 태어나게 된 비화, 모내기를 하는 날 남을 도우러 가는 아버지, 염을 하고 화장하는 순간에 엄마가 하는 엉뚱한 소리... 진지하고 진지해야 하는 순간에 진지할 수만은 없는 그런 일들이 자꾸 벌어졌다.
노동절 새벽, 아버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된 아버지의 가족들과 친구들,
장례식장을 대여섯 번이나 들리는 박한우선생, 오지랖 넓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동식 씨,아버지로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큰 뜻 한번 펼치지 못하고 쪼그라든 길수오빠, 인정 많고 시끄러운 사촌언니들, 친자식보다 더 아들같이 살갑게 아버지를 챙겼던 학수, 입방정으로 아버지를 잃고 살아갈 의지조차 잃어버린 작은아버지, 베트남 엄마를 노랑머리 사춘기 소녀등
잘난척하고 오만했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그저 한낮 타인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따뜻했다. 그들과 아버지는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따쓰한 정을 나누었고, 그들에게 아버지는 사회주의자 유물론자가 아니라 따뜻하고 오지랖 넓은 그런 인정스러운 사람이었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블랙코미디 같이 진지하고 시대를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는 내 아버지는 몸 약한 어머니를 위해 어린 나를 목욕시키고 엄마보다 더 잘 놀아주었던,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다정한 사람이었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 동네사람들에게는 다 사정이 있을 거라며 항상 도움의 손길을 먼저 뻗던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무엇이 아버지와 딸 사이를 이리도 먼 존재로 갈라놓았을까?
사회주의자, 빨치산으로 감옥에서 보낸 6년, 이 시간들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빨치산의 딸로 사는 인생은 정상적이지 못했고, 그런 삶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얼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했다. 정지아 작가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막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문장이 또 너무 슬퍼 마구 울었다. 내가 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아버지의 행동이 내 삶을 버겁게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같이 울며 내 삶을 다시금 반추했다.
책을 처음 집어 들고서 빨치산? 여순사건? 이런 시대적 단어들 때문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사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런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데올리기들에 갇혀 진짜 아버지에 대해 알지 못한고 아버지를 보내버린,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버지와 평생 데면데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딸의 고해성사이자 그리움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고 실컷 울고 나는 가끔 소설책을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장하는 삶도 가치 있고, 지혜롭게 사는 삶도 멋지지만 가끔씩은 그냥 사람 사는 거, 사람냄새, 가족들, 이웃사람들, 친구들, 그리움, 따뜻함, 온기, 다정함, 작은 행복, 소소한 즐거움들을 다시 한번 소중하게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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