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쇼펜하우어-인생론] 제6장 '나이에 따른 변화'

IamDreaming 2011. 2. 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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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철학을 강의하시는 저명인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마치고 사적인 자리에서의 그분의 말씀!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들. '책은 읽을수록 상상력이 커진다'에 대한 반기!  소설책 보다는 고전과 철학을 읽으라는 말씀이셨다.

이 부분에 대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줄 안다. 그 중 제일 큰 이유는 그분이 철학박사였고 철학자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고전과 철학을 강조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슬그머니 해본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들이 우스게소리로 했던것이 '가오' 였다.


사실 '가오'란 말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져서 사전까지 찾아보았다.

가오 잡다 : 폼 잡다
가오가 있지 :
체면이 있지
가오 상하다 : 폼 안 나다, 체면이 안 서다 

'가오 잡다', '가오가 있지' 등의 표현에 있어서는 '가오'가 맞으나, 이 단어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순화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가오(かお, 카오)'는 얼굴[顔]을 가리키는 일본말로 '얼굴을 내밀다(顔だし, 카오다시)' 꼴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폼 잡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정도는 들고 다녀야 가오가 살지 않습니까?"


이런 대화. 누가 들으면 '밥맛없다'는 비난까지 받을 줄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가오'보다는 '우유부단'한 내 성격에 지쳐있었기에 생각과 사유를 통해서 '강해지고 싶었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철학과 고전들은 어려웠기에 읽는진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나름의 재미를 느끼며 읽어보기로 한다.

한날 서점에 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책을 사고 싶었다.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다. 형이상학이라...그런데 그 책이 없었다. 그래서 고른것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다.이것 역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집어들었다. 인생론이라. 쇼펜하우어는 참 생각이 많았겠다싶다.

총 6개의 chapter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인간을 이루는 세 가지 근본 요소 / 제2장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 제3장 인간의 소유물에 대해서 / 제4장 사람이 주는 인상에 대해서 / 제5장 훈화와 금언/제6장 나이에 따른 변화

열심히 읽기를 희망했으나 어렵다.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그 중
제일 쉬워 보이는 제6장 '나이에 따른 변화'를 읽어보기로 한다.

읽으면서 제일 가슴에 와닿았던 몇구절을 적는다.


- 사물에 대한 견해에 의해서 우리의 유년기에 있어서의 태도는 의욕적이기보다 훨씬 더 완전히 인식적이다. 아동들에게서 곧 잘 볼 수 있는 진지하고 관찰적인 눈빛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년기에는 어떠한 자기 분열도 없이 주위의 상황과 경험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사물을 보면 이를 그 종에 속한 유일한 사례인 것처럼 생각했다. 유년기에는 사물의 바람직한 측면만을 바라보고 무시무시한 쪽의 측면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 지성은 현실과 인위가 나타내는 모든 사물, 모든 형상을 전부 최고의 행복으로 넘쳐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청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반드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행복에 대한 추구가 청년기를 흐릴 뿐만 아니라 불행하게 만든다. 행복의 추구로부터는 끊임없는 환멸이 생겨나며, 끊임없는 환멸로부터는 불만이 생겨난다. 청년기에는 어떠한 처지, 어떠한 환경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게 된다.

- 인생의 초반을 지배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대한 동경이라면 후반을 지배하는 것은 불행에 대한 우려이다. 틀림없이 인생 후반이 되면 무릇 행복이란 가공적인 것이며, 이에 반해서 고뇌가 실재적인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은 다소나마 확실하게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시대에는 초인종이 울리면 '드디어 와주었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이런, 결국 오고 말았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 공포와도 같은 것을 느낀다.

- 정신적인 우월, 가령 그것이 최고로 우월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과의 대화에서 확실하게 사람을 압도할 만한 무게를 발휘하는 것은 40세가 지나서부터이다.  정신적인 우월이 연령의 성숙과 경험의 수확을 뛰어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 청년기에는 직관이, 노년기에는 사고가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기는 시에 경도되는 시기이며, 노년기에는 철학에 경도되는 시기이다. 또한 실제로 청년기에는 직관적으로 느낀 사물과 그 인상에 의해 움직이지만 노년기가 되면 사고에 따라서 움직일 뿐이다. 이것은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충분한 숫자의 직관적인 사례들을 겪게 되고 이러한 사례가 개념에 의해서 포괄되기에 이르기 때문에 개념에 대해 충분한 의미와 내용, 신용을 부여할 수 있고 동시에 직관에 의한 인상을 습관에 의해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두고 있다.

- 보통 청년기에는 행복한 시기, 노년기는 비애의 시기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번뇌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맞는 말이다. 청년기는 번뇌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기쁨이 적고 괴로움이 많다. 냉정한 노년기는 번뇌에 시달리지 않는다. 노년기는 명상적인 색조를 띠게 된다. 인식이 자유자재로 주도권을 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고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식이 의식속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수록 의식은 행복해진다.


위의 글은 나 스스로가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구절들이다. 나만의 감상이니 글의 요약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을 읽으며 또래 친구들의 행동과 부모님 세대분들의 행동에 대해 하나씩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공감했던 부분이 많았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구절도 있었다.

살아보지 않은 노년기에 대해 나 스스로 고민할 부분은 없었다. 이미 지나온 유년기에 대해서도 후회할 수 없었다. 단지 청년기에 느끼는 고통과 번뇌를 행복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노년기의 직관과 지혜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 인생에 대한 그의 통찰력과 번뇌, 그리고 장구한 글과 표현.
평범한 나같은 사람이 그의 사유를 쫓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결국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에 현자들의 글을 읽고 배우는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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